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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묵상] 요한복음 9장 13절-34절, 진실을 증거하는 겸손한 믿음

생명의 삶/43 생명의 삶 요한복음

by silentday 2025. 3. 8. 14:33

본문

요한복음 9장 13-34절을 바탕으로, 교만과 무지를 극복하고 겸손히 주님의 일을 증거 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문을 정리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맹인의 겸손을 대비하며, 진실을 외면하는 교만의 위험성과 겸손한 믿음의 가치를 설파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교만을 경계하고,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겸손히 진리를 증거 하는 성도가 되도록 권면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생명의 삶 묵상] 요한복음 9장 13절-34절, 진실을 증거하는 겸손한 믿음
[생명의 삶 묵상] 요한복음 9장 13절-34절, 진실을 증거하는 겸손한 믿음

 

 

요한복음 9장 13절-34절, 진실을 증거하는 겸손한 믿음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육신의 만족을 좇아 살아가지만, 결국 불만족과 문제에 직면할 뿐입니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구해야 합니다. 죄로 물든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새롭게 되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는 기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논쟁과 교만으로 이 기적을 외면합니다.  오늘, 교만과 무지를 벗고 겸손히 주님을 증거 하며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론

 

첫째, 교만과 무지에 눈이 먼 바리새인들

본문 13절부터 23절은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을 접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맹인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갑니다.  그들의 관심은 치유 자체보다 안식일 논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진실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비난과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분쟁합니다.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다른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 행하겠냐며 반문합니다. 그들에게 맹인의 치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쁨의 사건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를 위한 논쟁거리에 불과했습니다. 맹인에게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묻자, 맹인은 “선지자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맹인의 부모를 불러 심문합니다. 그들은 맹인이 정말 맹인이었는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행적을 불신하려는 완강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혹시 거짓은 아닐까,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의심하며 적대적인 시선으로 진실을 왜곡하려 했습니다.

맹인의 부모는 아들이 맹인으로 태어났고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합니다. “그에게 물어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는 진실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명백한 기적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전과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눈앞의 기적보다 자신들의 권위와 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키는 완악함을 드러냈습니다.

 

둘째, 겸손함으로 진리를 증거하는 맹인

본문 24절부터 34절은 바리새인들의 두 번째 심문과 맹인의 담대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다시 맹인을 불러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종교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상은 맹인에게 위증을 강요하는 악의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맹인에게도 그렇게 말하도록 압박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맹인은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라고 단호하게 증거 합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위협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명백한 사실, 즉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기적을 증언합니다. 그의 증거는 꾸밈없고 진실하며, 어떤 권력이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확신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황하여 다시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되묻습니다. 이미 맹인이 여러 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이는 그들이 할 말이 없고, 예수님의 치유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완강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진실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예수님을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하려는 얄팍한 술책에 불과했습니다.

맹인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라고 반문합니다. 조롱 섞인 질문은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들은 분노하여 맹인을 욕하며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라고 외칩니다. 자신들은 모세의 권위를 잇는 정통이고,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단이라고 폄훼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반박하며 그들의 무지를 꼬집습니다. 맹인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의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과, 창세 이후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그의 담대하고 지혜로운 변론은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무지를 더욱 부각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며 맹인을 쫓아냅니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게 되자, 권위를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진실을 억압한 것입니다.  맹인은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용기 있게 진리를 증거 했고, 그의 담대함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무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겸손한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무지, 그리고 맹인의 겸손과 믿음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맹인의 치유 앞에서 오히려 문제점을 찾고 심문하며, 위증을 강요하는 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교만과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해설과 묵상에서 설교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 안에도 이러한 교만과 무지의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모든 것을 아는 듯 설명하려다 모순에 빠지고, 거짓으로 포장하려는 연약함을 인정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겸손 대신, 오히려 세상의 권위로 위협하며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맹인은 달랐습니다. 그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담대하게 증거 했습니다.  그의 힘은 세상적인 권력이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진리를 구하고, 경험한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3절부터 26절 말씀처럼, 우리는 어리석은 변론을 버리고, 온유함과 인내로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다툼이 아닌, 사랑과 겸손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겸손히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추구하듯, 우리도 힘을 빼고 성령님께 의지하며,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계획을 내려놓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기대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는 겸손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 모두가 이러한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9장 말씀을 통해 교만과 겸손의 극명한 대조를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교리에 갇혀 눈앞의 기적을 외면하고, 오히려 진실을 억압하려 했습니다. 반면 맹인은 겸손하게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증거 하며,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했습니다.  교만은 우리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고, 어둠 속에 가두지만, 겸손은 우리를 진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빛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지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히 주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 안에 있는 교만과 무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허락하소서.  주의 보혈로 저희 영혼을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저희 삶을 통해 주님이 행하신 일을 겸손히 증거 하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교회 공동체가 겸손히 주님 뜻에 순종하며, 진리 안에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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