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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절, 예수(Ἰησοῦς, 이에수스, Jesus) - 헬라어 원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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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탄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로서의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에 대한 여러 의미와 해석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 예수(Ἰησοῦς, 이에수스, Jesus) - 헬라어 원어 정리
마태복음 1장 1절, 예수(Ἰησοῦς, 이에수스, Jesus) - 헬라어 원어 정리

 

 

마태복음 1장 1절, 예수(Ἰησοῦς, 이에수스, Jesus) - 헬라어 원어 정리

 

 

개역개정 성경과 ESV의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헬라어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Δαυεὶδ υἱοῦ Ἀβραάμ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에 대한 정리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는 구약에 나오는 예수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인데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 한 다음 주격 변화를 위해 시그마(-s)를 붙인 것이다.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수아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여호와라는 신성한 이름을 포함한 오래된 이름이며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NTD).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알려준 것으로, 아들의 사명을 나타낸다. -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1.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의 의미 - 여호수아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는 구약의 여호수아(출애굽기 등에 나타나는 눈의 아들의 이름, 학개와 스가랴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의 이름, 삼상 6:14와 왕하 23:8의 두 사람 이름, 대하 31:15의 레위인의 이름)의 헬라어 형태이다.

 

2.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의 의미 - 통상적인 의미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는 주후 2세기 초기까지만 해도 통상적인 이름이었다. 신약은 행 7:45; 히 4:8에서 여호수아를 이에수스라고 표기한다(개역: "여호수아"); 참조: 눅 3:29의 이에수스, 마 27:16의 이에수스 바랍바스(개역: "바라바"), 행 13:6의 바리에수스(개역: "바예수"), 골 4:11의 이에수스(개역: "유스도라 하는 예수"). 2세기 이후부터는 이에수스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아마도 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기를 피했기 때문인 것 같다.

 

3.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의 의미 - 인간성을 의미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나타낸다. 그는 바로 이 이름으로 사셨고, 이 이름으로 선포되었고, 이 이름으로 거론되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기타 인물들과 예수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마 21:11), "다윗의 자손"(막 10:47-48; 막 1:24; 막 27:37; 요 18:5 등) 같은 문구를 덧붙였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 이에수스를 "생명의 주"(행 3:15), 하나님의 그리스도, 주님, 구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에수스와 호 퀴리오스(주님)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 왜냐하면 이에수스는 하나님께서 주님과 심판자(참조: 빌 2:7; 갈 3:1; 행 17:31)로 만드신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간단하게 이에수스라는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우리는 또한 호 퀴리오스(누가복음) 및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예수 그리스도), 호 퀴이오스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고정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신약성경에는 간단히 이에수스만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울은 살전 14:14; 고후 4:11 이하; 빌 2:10과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을 생각하면서 "예수"라는 이 단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서도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예수의 역사가 신앙의 근거를 형성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예: 히 2:9; 히 6:20; 히 10:19; 계 1:9; 계 14:12; 계 20:4; 계 22:16).

 

4.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의 의미 - 구원자를 의미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라는 이름은 역사적 실존의 견지에서 볼 때 중요하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라는 이름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그 이름이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마 1:21). 이 이름의 완전한 히브리어 형태는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데, "야훼께서 구원하신다"이다. 몇몇 교부들은 이에수스와 헬라어 이아오마이(낫게 하다)를 관련짓기도 하였고, 오늘날, 예수는 구원의 여신인 이아소의 남성형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적인 근거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과 헬라 세계와의 접촉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5.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의 여러 의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존을 의심하고 복음서를 신에 대한 역사적 신화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하나님에 대한 유대 신화가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개개의 기사들을 그 구체적인 형태와 연속적인 면에서 비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도식(schema)을 만들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라는 이름은 신화적인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도 증명되어야만 하며 기독교 이전의 예수 제의가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한 어떤 제의에 대한 직접적 혹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예수 제의는 아마도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관련이 있는 듯하나 이에 대한 논증은 이새 분파가 있었다고 하는 주장이나 테라퓨테가 예수라 하는 제의적 신을 숭배했다고 하는 주장들과 같이 순전히 사변론적인 것이다). 여호수아에 관해서 고찰해 볼 때, 후기 유대교에게 있어 출애굽은 극히 중요하지만,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실은 율법 수여에 비하면 이차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며, 여호수아는 아무데서도 메시아의 원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신약에서 율법은 아브라함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일시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다. 여호수아가 언급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서만 언급될 뿐이며(히 11:30-31; 행 7:45), 출애굽 사건이 성취를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급될 뿐이다(히 3:7 이하). 나세네 시편(Nassene Psalm)과 마술 파피루스들이 그리스도교 이전의 본문들이라면, 이 본문들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제의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후기의 것이며, 단순히 역사적인 예수가 준 영향을 단순히 증거 하는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단순한 용법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유력한(완전히 비의도적인) 증거가 된다.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에 대한 해석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실제로 예수라는 고유명사와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연결되어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주(主) 및 주님으로서, 그리고 구세주 임금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셨던 일반적인 구속자로서 나사렛 예수를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 문구인 것이다. 이 문구는 모든 기독교인의 후세에게 주어진, 그들 신앙의 대상에 관한 적절한 진술로서 영원한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우선 예수라는 이름을 다루고 다음에 그에 관련된 역사적, 신학적인 문제를 다룰 필요성이 있다. 그다음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나사렛 예수에게 부여된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생각해 볼 것이며, 끝으로 그리스도로서의 나사렛 예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1. 구약성경과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G2424)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슈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인데, 그것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 한 다음, 주격의 격변화를 하기 위해 시그마(-s)를 붙인 것이다. 예슈아(여호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슈아 대신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70인 역본은 그 이름의 옛 어형과 보다 근대의 어형을 모두 이 이에수스로 언급했다. 전승에 의하면 모세의 후계자였으며,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약속된 땅을 점거하게 하여 그의 사명을 완수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이 이름으로 나온다(참조: 출 17:8-16, 출 24:13, 출 32:17, 출 33:11, 민 11:27 이하, 민 13:8, 민 14:6-9, 민 14:30-38, 민 27:18, 21 이하, 신 31:3, 7, 8, 14 이하, 신 31:23, 신 34:9, 여호수아서).(p854).

그 이름은 여호와라는 신성한 이름을 포함한 가장 오래된 이름이며,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참조: 동사 야샤[돕다 halp, 구하다 save]). 여호수아는 또한 히브리 구약성경에서 포로시대 이후의 한 구절에 나오는데(느 8:17), 그것은 더 오래된 본문에서처럼 예호슈아로 나오지 않고 예슈아로 나온다.

팔레스틴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와 원시 기독교 시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리스테아스(Aristeas, 48f)에 의하면(기원전 2세기, 더 정확한 시기는 논쟁이 되고 있음), 그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모세 오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던 두 팔레스틴의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훨씬 더 옛날로 돌아가면, 외경의 집회서 저자인(참조: Sir. 50:27) 예수스 벤 시락(Jesus ben Sirach)도 찾아볼 수 있다. 주후 1세기에 살았고 팔레스틴의 제사장 가문에서 나온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헬라어로 쓰인 수많은 글 가운데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19명이나 들고 있다. 이들은 그 민족의 고대 역사와 근대 역사 모두에서 나오며, 그들 중 절반 가량은 그가 "소위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Jesus the so-called Christ)라고 언급하고 있는 예수의 동시대인들이었다(Ant. 20, 9, 1). 그러나 그 이름은 이 당시에 비 문학서들인 수많은 유대 문헌에도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 묘비문(Leontopolis나 카이로 북동쪽 Tell el-Yehudieh, ZNW 22, 1923, 283)과 예루살렘 부근의 납골당에 쓰여진 글 등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적혀있고 헬라어로 적혀있다. 아람어로 된 것들 중 하나는 예슈아 바르 예호세프, 즉 요셉의 아들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2. 신약성경과 Ἰησοῦς(이에수스, 예수, Jesus)

첫째,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와 그 제자들의 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러한 설명에 쉽사리 들어맞는다. 그리하여 누가의 예수 족보에서 그것(눅 3:29)은 전혀 이상하지 않게 그의 조상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

골 4:11은 유대인이며 기독교인인 예수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당대의 관습에 따라, 그리고 아마도 또한 로마 시민으로서 유스도(Justus)라는 셈어가 아닌 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바에 비추어 볼 때, 여호수아도 신약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행 7:45, 히 4:8).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그와 예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던 열심당원 바라바 조차도 예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는 매우 뚜렷한 기록이 있다. 마 27:16 이하의 성경 본문 전승은 비교적 초기에 그 이름과 바라바를 연관시키는 것이 어려웠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몇몇 고대의 사본과 귀중한 사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본들에는 그것이 삭제되어 있다. 연결된 전승이 더 이상 예수라는 이름을 보이지 않는 구절 가운데 신약성경 전반에 걸친 여러 구절들에서 이와 비슷한 원문의 간섭을 찾아볼 수 있다(참조: 눅 3:29, 행 7:45, 행 13:6, 골 4:11, 특히 막 15:7, 몬 1:23, 참조, A. Deissmann, in G. K. A. Bell and A. Deissmann, eds., Mysterium Christ, 1930, 18ff.). 여기서 그 동기는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명백한 깊은 존경심이다. 그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로서의 예수 외에 누구에게도 허락될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존경심은 그 논리적인 결과로써, 매우 신속하게 기독교인들의 편에서 그 이름을 더 이상 세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의 일반적으로 폐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사람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 대신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름 여호수아(예호슈아)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에 상당하는 헬라어 이아손의 형태로 널리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동화 과정을 통해 그들 사이에서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었던 것이다(참조: Aristeas 49, Josephus Ant. 12, 10, 6).

탈무드 유대교가 나사렛 예수를 지칭할 때 예슈아가 아니라 예슈라고 부르게 된 사실도 그와 같은 배경에서였다. 비록 그 이유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주님을 예슈라고 (기본 히브리어형의 '아'를 포기하고) 불렀다는 순수한 외적인 사실에 기인할지 몰라도(p855), 그것은 또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의 표현일 뿐 아니라, 모든 이름들 가운데서 이 이름이 기독교인들에게 유일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둘째, 마 1:21과 눅 1:31에 의하면 예수의 이름은 아버지(마태복음)나 혹은 어머니(누가복음)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결정되었다. 이 문맥에서 마태는 역시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을 내려주고 있다. 도중에 그것은 마리아의 아들이 장차 해야 할 일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확실히 예호슈아(하나님의 이름과 슈아로부터 형성됨)라는 이름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이미 언급한 대로 헬라어 이에수스(G2424) 안에 계속 남아 있다. "여호와는 우리의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다"(참조: M. Noth, Die isralitischer Personennamen in Rahmen der gemeinsemitischer Namengebung, 1928, 154). 이 이름의 의미가 그때 완전히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성서 해석가이며 종교 철학자였던 필로가 여호수아의 이름을 아래와 같이 해석한데서 입증되고 있다. 이에수스 소테리아 퀴리우, 예수는 주님을 통한 구원을 뜻한다(Mut. Nom.121). 비록 시편 31(70인 역본, 30편):8, 130(70인 역본, 129편):8과 같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이 구원의 의미를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으로 축소시킨데 있어서 마태복음의 단어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그 근본적 의미는 명백한 것이다. 그 구절들은 이전에 하나님의 것이었던 것들을 예수에게로 돌렸다. 눅 2:11에도 예수의 이름에 대한 같은 이해와 그에 부합하는 증거가 들어있는 듯한데, 그곳에는 예수의 탄생날 밤에 주의 사자가 목자들에게 예수를 소테르, 즉 구주라고 알렸다. 이런 점에서, 죄인들의 구주로서의 예수에 대한 증거가 있었다는(참조, 눅 15장) 것이 특별히 누가복음에 들어 있으며, 천사가 전하는 말(눅 2:11)이 분명히 눅 1:76을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두 곳 모두에서 빌 2:9와 흡사한 신학적인 방법론을 지닌 아주 초기의 기독론을 접하게 된다. 그들에 관한 한, 예수라는 이름은 다시 사신 영광된 나사렛 예수에게 부여된 주님이라는 칭호 안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후일에 이루어질 것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분명히 바나바의 편지(Barn.) 12:8 이하와는 아주 다른 것인데, 그곳에서는 비록 여호수아와 예수가 헬라어로 같은 이름이라는 근거에서지만, 나사렛 예수에 관해 여호수아의 성경 안의 모습에 깃든 어떤 특성에 대한 유형론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초기의 케리그마(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사도 선언) 전통이 나타나 있고, 후자는 신학적이고 변증론적인 사고가 나타나 있다- K. H. Rengstorf.] (p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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